이정하, 허수아비
2015. 1. 21.
살아가다 보면
사랑한다는 말만으로 부족한 것이
또한 사랑이었다.
한 발짝도 뗄 수 없었던 허수아비는,
사랑하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음에
너무 미안했다.
매번 오라 하는 것도 미안했던 허수아비는,
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곤
그에게 가라고 손짓할 수 밖에 없었다.
그리고선
그가 떠나간 곳만 쳐다본다.
그래서 허수아비는
밤이 깊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.
고개 떨어뜨리고
남몰래 운다.
텅 빈 들판,
허수아비는 외로웠다.
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
누군가를 사랑해서 외로웠다.
사랑한다는 것은 이렇듯
외로움을 견뎌내는 일인가보다,
철저히 혼자서.
— 이정하, 허수아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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